난 일하는 엄마다. 아이들을 키울때도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하나 하나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생겼을 때 남편이 나보다 더 아이를 잘 돌봐줬다. 그래서

남편은 남매에게 "니들은 내가 다 키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나도

한 일이 많다. 젖 물려 키우고 잠 많은 남편을 위해 밤엔 사랑으로 돌봐줬다. 내가 지금도

우리 애들에게 가장 잘해주는 일은 스킨쉽. 늘 안아주고 볼에 뽀뽀하고 책 읽어주고 사랑

한다 말해주고..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다행히 항상 바쁜 부모 편하라고 자기들이 알아서 자기 일을 잘 하는

편이여서 정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어렸을 때 용돈을 주거나  잘못했을 때 따끔하게 혼내고

계모처럼 매까지 들며 키워서 우리 애들은 부모 말을 무서워 하고 잘 지키는 편이다.


그렇게 착한 아이들에게 내가 가장 잘 못해주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는 일. 나는 그게 무섭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싫다. 선생님들이 돈을 달라거나

선물을 요구하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학교 운영위원같은 일을 맡기는게 싫어서도 아니다.


나는 4남매에 맏이로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 공장이 잘 되어 유복했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위해 치마바람 엄마 역활을 해주셨다. 담임 선생님이 우리 엄마가 찾아오면 나에게 약간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한 학급에 70명이 넘었으니까

그 많은 아이들을 모두 돌보기에는 선생님이 역부족이였을 것 같다. 그러니까 엄마가 학교에 오면

약간 달라지는 입장이 되는 것을 나스스로도  느끼게 되었던 것. 사실 난 그런 점이 조금

못마땅하기도 했었다.


부모님이 못오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해 담임 선생님의 관심은 끌었지만

아이들의 놀림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내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 아버지

가 사기를 당하시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기울어 내 동생들은 그런 혜택(?)도 못받았다. 그런

기억때문에 내가 부모가 된 후에 학교에 가기 싫은 것은 사실 아니다.


(내가 양말로 만들어 준 장난감을 갖고 놀던 5살 때 우리 아들)


내 어릴 적 기억보다  더 나쁜 기억을 나는 갖고 있다. 그것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있던 때

일 때문이다. 어느날 아들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전체 엄마를 불렀다. 엄마들 10여명이 문 밖에 줄을

서서 아이들에 대해 이런 저런 대화를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약간씩 갖고 있었다. 나도 동네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엄마들과 눈 인사를 하고  담임과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창피함을

무릎쓰고 울음을 터뜨리며 뛰어 나왔었다.


담임 선생님에 의하면 아들은 항상 수업에 겉돌고 수업에 집중도 못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교실 뒤에

있는 책을 꺼내 읽고 있다며 아무래도 학습장애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병원에 데려가 보시면 좋겠다고도 했다. 병원!! 내 아들이 병원에 갈 정도로 심각하다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아이들이 혹시 일하는 엄마인 나로 인해 제대로 자라지 못할까봐 늘 고민이 많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미어지고 후회스러워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단지 있었던 일을

말해준 것 뿐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듣는  에미 입장에서는 정말 쇼크였다.


부끄럽고 뭐고도 없고 길에서부터 울면서 핸드폰으로 회사에 출근해서 바쁘게 일하는

남편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 울음을 섞으며 말하다가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남편은 우리애가

무슨 이상한 아이냐고 담임 선생님이 잘 몰랐을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때 나에게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진정이 되고 나서는 기도하며 키운 내 아이가 잘 못될일 없다는 확신을 갖기까지 한동안 꽤

오랫동안 쇼크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 잘못되어도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나서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히 아들은 커다란 사건 없이 무사히 잘 컸고 오히려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과는 달리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학교에서 수재소리를 듣는 아이가 되었다. 고2 처음 치룬 전국 모의고사에서  문과 전교1등도

했다. 그런데 우리 아들 담임 선생님이 다시 엄마를 부른다. 한번 뵙자고.  학교 운영위원 회의에 오란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를 잘하고 담임 선생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어도 학교 가기는 역시나 두렵다.


공부를 잘하는 것 말고도 다른 성격적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하지는 않을까? 교유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된다. 그때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겪었듯이 낳고 먹여

키운 내 아이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안다는 듯 말하는 선생님들의 평가가 나를 무서움에 떨게 하는 것 같다.


아이 문제로 우울해 본당 주임 신부님을 찾았을 때 신부님이 해 준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게 아니지요.

소피아가 하느님의 자녀인데 하느님이 돌봐주시지 않을까요? 아직

어린 아이가 살 날이 많은데 이렇게 저렇게 함부로 아이에 인생을

매듭짓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아무말 없이 지켜보는 것 그것도 부모가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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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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