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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력 하나만 놓고 본다면 BMK는 절대 7위를 할 가수가 아니다.

왜 그런데 오늘 나는 7ㅏ수다 에서 7위를 한 것일까?

그것도 가창력이나 음악 스타일로 본다면 같은 장르라고 말할 박정현이 1위인 것을

놓고 비교한다면 의아하지 않나?

 

물론 다른 가수들이 그보다 잘했으니까 당연하다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그보다는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보인다. BMK조차도 만약 7위를 한다면 내 음악인생이 대중의

기호와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고 까지 한다. 이는 모든 대중가수의 걱정이다

음악이 좋아 노래하고 가창력이 남달라 남에게 보컬까지 가르치는 그의 입장에서 보면

대중이 선호하지 않는 가수라는 것은 그냥 노래 잘하는 선생님에 불과하고

스타일 수 없다는 논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그런 걱정은 놓으란 말을 하고 싶다. 폐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선곡이다.

가장 대중적인 노래를 택해야 한다는 명제를 놓고 볼 때 BMK의 선곡은 4,50대를 겨냥한

선곡임에는 틀림 없지만 청중 평가 단 속에 1,20대와 어중간한 30대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나 보다.

 

변진섭 정말 훌륭한 가수다. 여전히 그의 노래를 애창하고 그를 둘리라 부르며 그의 결혼생활까지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스타가수라는 면에선 이견이 없는 좋은 가수의 좋은 노래

이지만 그가 노래할 때 아직 태어나지 않은 1,20대에는 생소한 노래 일수 있다.

 

그럼 왜 박정현은 왜 1위일까?

박정현이 BMK보다 노래를 잘해서 일까? 그 점은 선호도와 팬 층이 나뉠 수 있으니 글의 중심

논제가 아니라 결론은 글을 읽는 사람의 자유의지에 맡기겠다.

 

 

일단 박정현은 조용필의 노래를 골랐다. 조용필이 변진섭 보다 더 나은 가수라고 말한다면

이것도 팬 층과 선호도로 그냥 순위를 매긴다면 어폐가 있겠고 가요 사에 남긴 족적을 살펴본다면

66년생인 변진섭에 비해 50년생인 조용필의 가요 인생이 더 길고 더 국제적이라는 점이다.

일본에서도 톱스타였던 한류스타의 최선봉이기도 했던 가수가 바로 조용필이다.

 

게다가 얼마 전 위탄에서 조용필 편을 해서 조용필의 예전 노래들이 새롭게 경연자들의 음색으로

이미 대중에게 한번 더 어필된 상태이다. 그때 심사단 평가 1등을 하고도 탈락한 정희주가

부른 노래가 바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였다.

 

그보다는 더 오래 전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KBS 음악프로 마성의 소유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루시드 폴에 의해서 만지다 에서 장기하에 의해 다시 편곡된 노래를 들려주었던

전력이 있는 노래다. 왠 만큼 음악에 관심 있는 마니아 라면 이 노래는 자주 접한 레퍼토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는 어쩌면 BMK가 다시 불렀다고 해서 새로운 점을 발견하기엔

무리였다. 이런 생소한 선곡 때문에 김범수가 지난 주에 7위를 했었던 점을 간과했던 것이

7위를 하게 된 것 같다.

 

그럼 가수만 보고 선곡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그에 비해 김범수는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를

불렀는데 이 노래는 왜 3위를 했을까? 지금은 거대 기획사SM에서 없어선 안 될 프로듀서이지만

오히려 유영진이 변진섭보다 더 눈에 띄는 수상 경력이나 히트곡 순위에서 밀리는데 말이다.

 

누구는 김범수가 징 박힌 가죽 조끼를 입고 나와 볼거리로 경쟁하려고 한다고 우려한다.

그 글에 싸움 걸려는 마음은 없지만 한마디로 택도 없는 소리다. 김범수의 공연을 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공연에서 김범수는 양복만 입지 않고 다양한 옷을 입고 나온다. 나는 한복 입은

것만 못보고 다 본 것 같다. 청바지를 입고 춤도 추고 트로트도 맛갈나게 소화한다. 그렇게 따지면

삭발한 임재범이나 드레스를 입은 박정현에게도 같은 소릴 해야지.쩝. 가수에게 의상은 그저

포장일 뿐이다.

 

김범수가 3위 한 것은 옷 때문이 아니라 가창력을 뛰어넘는 애드리브 때문이다. 노래 말기에

보인 그의 애드리브를 들어보라. 그대의 향기란 노래를 장르를 탈피해서 편곡하지 않았음에도

본인이 폐가 찢어 질 것 같았다는 애드리브에 감탄하지 않은 청중단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음악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3위를 하는 것이다.

 

BMK는 변진섭의 노래에 그런 애드리브조차 넣지 않았다. 감탄하게 되는 볼거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냥 원래 BMK의 노래는 아니였나 싶도록 그냥 본연의 BMK였었고 재즈풍으로 바뀌었다고 했지만

발라드라는 노래 자체가 주는 분위기에서 탈피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 같은 여자 가수인 차라리 이소라를 보라! 1,20를 겨냥한 보아의 넘버1을 선곡했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로 편곡했을 뿐 아니라 선곡의 의외성과 더불어 칼을 간 듯 자기의 스타일을

버렸다. 주변에서 이제는 곡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충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BMK가 전혀 다른 장르의 노래를 선곡했다면 이 번 경연은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록큰롤이 아닌

누구나 다 아는 노래방 국민 애창곡 중 하나인 마법의 성을 연주까지 하면서 노래하는 윤도현처럼

색 다른 편곡이 주는 묘미도 없었기에 미성인 김연우 마저도 6위를 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박정현이 1위를 한 이유를 들어보겠다. 150센티미터 키에 옷도 핀으로 줄여서

입는 이 작은 여가수가 노래를 마치 클래식 독창회를 하듯이 드레스를 입고 폭발하듯 열창하는 모습도

비주얼 면에서 볼거리가 풍성한 무대를 만족하게 했다면 맨 마지막 순서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순서도 무시 못한다. 만약에 임재범이 마지막 순서였다면 고작 4위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BMK는 운도 없었던 듯.

 

노래라면 빠지지 않는 가수들이 모여서 기 싸움을 한다. 그 안에서 가수들은 피가 마를 것이다.

보는 우리는 즐겁지만 말이다. 거기에 포함되어 노래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자만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가수라는 평가가 될 수도 있지만 경연은 경연이다. 위의 문제들을 등한시 하지 않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김연우도 가수들의 선생님 BMK도 언젠가 청중 단을 깜짝 놀라게 할 본인들의

무대를 찬사 속에 드러낼 것 같다.  사실 임재범의 말처럼 순위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일곱명 중에 7위를 하게 되면 기분이 다른 것이다.

메인 기념 사진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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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잔 - 임재범

그대의 싸늘한 눈가에 고이는 이슬이 아름다워 하염없이 바라보네 내 맘도 따라 우네가여운 나의 여인이여 외로운 사람끼리 아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 들고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그대여 나머지 설움을 나의 빈 잔에 채워 주오 그대의 싸늘한 눈가에 고이는 이슬이 아름다워 하염없이 바라보네 내 맘도 따라 우네가여운 나의 여인이여 외로운 사람끼리 아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 들고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그대여 나머지 설움을 나의 빈 잔에 채워 주오 나의 빈 잔에 채워 주오

가사 출처 : Daum뮤직


 

사실 삶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 인생은 모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 있다. 극단의 빈곤이 생활을 힘들게 하고 때로 빈곤과 함께 질병 또는

정신적 문제 같은 어려움들도 삶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미련하게도 한 순간에

어떤 이는 삶을 미련 없이 버린다.

누군가는 말했다.  인생의 승자는 성공하는 것 보다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7ㅏ수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음악프로를 유난히 좋아하는 내가 지난 번에는 김연아의 피겨대회 때문에 위탄을 버렸지만

오늘은 김연아의 아이스 쇼를 버리고 나는 7ㅏ수다를 시청했다.

 

가장 이슈가 된 임재범 등 새로운 가수의 등장과 변경된 룰 그리고 바뀐 제작진등

다시 시작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5월8일 방송엔 오랫동안 대중에서 잊혀졌던 그의 일상을 고백하는 인터뷰가 있었다.

우울증으로 8년 동안 무기력했다는 말과 함께 사랑하는 아내의 암 투병, 무대를 버리고

저작료로 그냥 저냥 먹고 살았다는 지난 세월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그.

 

지난 주에 이어 오늘 임재범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 동안 무대를 잃어버렸던 가수의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를 봤다. 자신의 목소리에 감동을 받는 팬들을 위한 선물이

노래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 하다.

 

나는 7ㅏ수다에서 노래하는 임재범의 지금 상황이 그냥 고맙다. 살아남아 노래를 부르는 ,

무대로 돌아온 그가 정말 눈물 나게 고맙다. 그가 있어서 오늘 이런 음악도 듣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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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원작자가 일본인이라고 해서 나름 흥미로웠다.

번역자 역시 일본인. 제대로 한국어의 맛을 살려 연극의 묘미를 살려줄까? 하는

궁금증도 앞서고,그렇게 오랜만에 성균관대학 앞을 찾아 나섰다.

 

날마다 느끼는 건데 혜화동에는 정말 아담하지만 알찬 소극장들이 참 많아졌다.

마방진 소극장

뼈의 노래는 일본의 작은 바닷가 마을 센보의 풍습을 알아야 연극을 이해할 수

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매장했다가 나중에 뼈를 거둔 후 뼈에 세공을 하는

풍습은 죽은 이를 기억하는 센보 마을만의 전통 장례 풍습이다.

 

묘비 대신에 바람개비를 접어 바닷바람에 바람을 일으키게 하고 천 개의 바람개비가

완성되면 신기루가 나타나 모든 고통과 번민 슬픔을 거둬가고 소원을 이뤄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나서부터 생긴 풍습이다.

센보 마을의 가난한 집을 배경으로 이 연극은 시작된다.

죽은 엄마를 화장하고 난 카오루와 사오리는 이름난 뼈 세공사인 아빠와 그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고 고향을 떠나간다.

 

18년 후 고향이 그리워 도망친 사오리를 찾아 나선 카오루 때문에 세부녀는 다시 재회하는데

도시생활에 물들어 고향과 옛 풍습을 잃어버린 카오루.

 

그런 언니와 다르게 고향에서 자신의 청력을 잃어버린 사오리는 바람개비를 통해서

따뜻한 엄마와 어린 시절 놓쳐버린 화목한 가정을 그리워한다.

 

아픈 작은 딸의 귀향을 핑계 삼아 딸들과 못다한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려는 늙은 아버지와

고향의 옛풍습조차 못마땅한 큰딸. 오랜 기간 도시와 어촌으로 낡은 전통과 현대적인

문화 속에 과연 그들은 고향의 전설을 믿고 화해할 수 있을지.

 

연극은 늙고 고집스러운 아버지 역의 배우 김병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맛깔나고

차도녀의 인상이 강한 큰 딸역 배우 남정원과 작은 딸 사오리역의 배우 송정화의 열연으로

심심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긴 시간을 몰입하게 만든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있다. 바로 전쟁으로 패망한 후에 그 상처를

이기고 급속하게 선진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미래를 보려면 그들의 생활을 살펴봐야 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가족의 해체와 고령화 사회, 그리고 신구 세대의 의사소통 부재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연극 뼈의 노래는 이런 문제를 한 작은 어촌

가정을 가지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지식하게 시골 풍습을 고집하는 늙은 아버지 때문에 답답해 하지만 아픈 동생,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카오루와 아버지는 화해한다.

 

왠지 일본의 아버지이지만 우리들의 가난하고 고루한 아버지와도 많이 닮았다.

곧 5월이 된다. 어버이날 부모님과 함께 이 연극을 보면 어떨까?

연극이 좋아서 연출가 윤혜진씨를 무대에 세워 기념사진을 찍었다.

배우들과 찍어야 하는데 하면서 부끄러워했지만 사양않고 포즈를 취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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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영국의 합작영화라는 황당한 외계인 폴을 남편과 봤다. 우리가 그 동안

영화를 보면서 모아 놓은 마일리지 중 일부가 8월에 없어진다는 메일에 서둘러서

고른 영화다. 남편이 조조로 보는 영화는 자막읽기 싫어해서 '위험한 상견례'를

골랐는데 조금 늦었더니 입장 불가라고 해서 도착시간에 맞춰서 그냥 선택한 영화다.

뒤로 가서 기네스 펠트로 엄마 블라이드 대너가 나오고 까메오로 나오는 시고니 위버

말고는 눈에 익숙한 배우가 없어 영화가 참신은 했는데 한참 웃으며 보다가 보니

이 영화 이거 조금 위험한 영화다 싶다.

 

60년을 살아 산전수전 다 겪은 외계인은 우리가 흔히 봐온 외계인 모습이지만 폴(Paul)이란

이름을 지녔다. 영화 첫 장면 소녀 타라가 잃어버린 강아지 이름이 바로 폴이였다.

자신이 착륙한 우주선에 깔려 죽은 개 이름이라고 지구의 이름으로 선택한 외계인 폴.

 

영어권의 폴이란 이름은 가톨릭에서는 사도 바오로를 말한다. 개신교에서는 사도 바울.

바오로는 어떤 사람인가? 12사도는 아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개과천선하여 이방인을

위해 선교한 이방인의 사도로 순교한 성인이다.

왜 폴이란 이름을 사용했을까? 이방인에게 예수님을 전도한 폴을 의식해서 지구인들에게

외계생명체에 대해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의 거룩한 창조물로만 알고 살아온 지구의 독실한 개신교도 부녀가 외계인 폴의

우주 생성 텔레파시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린다. 외계인 폴은 노골적으로 우주 창조를

하느님이 하셨다니까 코웃음 치며 비웃어 댄다.

게다가 자신의 별에서는 모두 양성애자라고 말하고 남자 주인공들에게도 게이 커플이냐고

묻는다. 하긴 이 둘의 여행 내내 여타의 다른 지구인들에게 게이 커플로 오해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현재 동성애에 대한 가장 확실한 거부감은 개신교 및 가톨릭등 그리스도교

의 공통된 견해다.

 

폴의 구출을 위한 팀에 합세하게 되는 신앙이 독실한 처녀 루스는 폴을 만나고 나서 신앙 때문에

억눌려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해댄다. 욕을 배워 마구 일상어로 내뱉고 생전 처음

마리화나를 피워보고 이제 마음껏 섹스 하겠다고 천명한다.

실컷 웃으며 영화를 봤지만 한편으로 씁쓸했던 것은 영화 내내 그리스도교 전체가 우리 삶을

제제하고 삶의 즐거움을 억누르는 억압의 종교인 듯 행동하며'광신도 기독교인들이란..'이란

대사를 내뱉으며 혀끝을 차는 외계인 폴.

 

교리를 배운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의 행복을 원하시는 분이지 우리의 불행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그리고 창세기처럼 흙으로 빗어 사람을 만드신 것은

직유가 아닌 은유라는 것을 말이다. 우주 창조가 시작되는 빅뱅의 순간을 만드신 전지전능함은

누군가의 권능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지금 유럽이나 미국의 그리스도교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다. 점점

신자수가 축소되고 있고, 신앙을 전도해야 할 성직자들의 추문과 부의 축재. 그리고 사도직과

선교직 지원자 수의 감소 등이 지금의 유럽 그리스도교의 현황이다.

 

이런 모든 일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느님이나 교리의 문제가 아니다. 교리대로 살지 않는

신앙인의 문제인 것이다. 외계인 폴은 하느님을 비난하기 보다 그것을 비틀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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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선택하면서 나도 모르게 별표에 집착하게 된다. 전문가의 별표뿐 아니고

일반인의 별표까지도 말이다. 혼자 영화를 보고 온 후로 남편이 너무했다 싶었는지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영화 예매 전에 서둘러 평점들을

둘러 보고 결정한 영화가 바로 내 이름은 칸.

얼마 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감동적이란 인터뷰도 기억나고 해서 남편과 별 기대

없이 본 영화다.

내 이름은 칸도 종교 영화가 아니다. 아마도 911테러 이후에 아니 알카에다의 숱한 테러 이후에

인종의 비빔밥이라는 미국에서 이슬람교도들을 대하는 태도가 심각한 차별의 연속이였나 보다.

아니 그 보다는 이들과 전쟁을 서슴지 않았던 부시 행정부의 적대적인 이슬람 정치가 문제

였는지도 모르겠다.

 

큰소리와 노란색을 두려워하며 깐이 아니라 콧소리로 카안이라고 이름을 설명하는 칸은 무슬림 중에서도

흔히 자폐증이라고 불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착한 남자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애정 속에서 자랐고 어머니의 죽음 후에는 그를 이해하는 심리학 교수인 제수씨의 도움으로

세상을 살게 된다. 동생의 권유로 회장품 외판원을 하면서 알게 된 싱글맘 만디라에게 반해

힌두교도 만디라와 결혼하게 된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기계를 잘 다루고 한번 보고 들은 것은 뭐든 암기하는 천재적인 지능의

칸은 911테러 이후 즉 이슬람인들에 대한 차별을 경험하다가 급기야는 극심한 학교 폭력으로

만디라의 아들이며 자신의 양아들인 샘을 잃게 된다.

 

격분하며 이슬람 교도와의 결혼을 후회하는 아내 만디라를 위해 대통령을 만나

이슬람인 모두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하겠다는 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떠돌게 된 칸의 긴 여정이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신에게 이르는 길은 등산과

같다고 설명했었다.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경로가 있다고 불교, 이슬람, 천주교

개신교가 모두 하나를 위해 산 정상을 오르지만 모두 같은 길로 오를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종교가 테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교란 이름으로 권력을 앞에 두고 싸우는

종교인이 문제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한참 부족한 장애인이 가슴 먹먹하게 만드는 장면을

보곤 한다. 내게 가장 큰 감동 준 장애인은 바로 이경규의 양심 냉장고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정지선에 정차했던 지적 장애인 부부.

 

제 잘난 멋에 사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가끔 정상적인 신체구조를 지니고도 장애인처럼

덜 떨어지게 사는 사람들 투성인 지구상에서 가장 사람답게 사는 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그들 보다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고 느껴진다.

영화 내 이름은 칸을 보면서 왜 갑자기 그 장애인 부부가 먼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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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 늦게 영화 후기를 쓴다. 나탈리 포트만이 발레리나로 분했던 블랙스완.

블랙스완의 발레 모습을 대역한 발레리나가 나탈리 포트만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타자

본인이 85%이상 춤을 추었다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물론 감독은 나탈리 포트만이

대부분을 소화해 냈다고 반론을 폈지만 말이다.

 

상영 초반에 영화를 본 나는 나탈리 포트만의 발레 모습에 놀라기도 했었다.

어려운 동작을 완벽하게 재연해 내는 발레 동작에 말이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생각하니

내가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발레 동작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영화의 재미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여배우의 심리 상태를 따라가는 시나리오와

카메라 워킹에 있었다. 그리고 발레리나 역에 제대로 어울리게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를

만드느라고 억세게 다이어트를 한 듯한 나탈리 포트만의 미간의 주름까지 표정연기가 절묘했다.

 

어머니의 못다한 꿈을 대신하기 위해 발레만이 전부로 알고 자란 여자의 완벽주의를

향한 욕구와 그것을 이루지 못할까 봐 불안한 심리를 나탈리 포트만은 초조하게 미세한

눈동자 떨림에서 마저 완벽하게 여주인공 니나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상을 받은 것이다.

대역을 한 발레리나는 발레 동작에 무게를 두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본인이 어려운 동작을 모두 대역했음에도 영화의 성공에 공로한

자취를 알아주지 않는 현실 그것이 분했을 것이다. 그 마음 십분 이해가 가지만

우리는 발레리나의 춤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발레가 전부였다면 이 영화대신에 발레 공연을 봐야 마땅하다.

영화는 발레 동작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발레란 매개를 통해서 완벽을 이루고자

고뇌하는 여자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임신하게 되어 발레의 꿈을 접은 엄마의 꿈을

대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한 여자의 삶을 어떻게 파국에 치닫게 만드는지

알려주는 것이 이 영화의 본질이다.

혹시 딸이 자신처럼 임신을 해서 재능을 접을까 노심초사하는 엄마는 다 성장한 딸을

아기처럼 키우고 그런 엄마 옆에서 영원히 소녀여야 하는 성적 억압에 시달리게 된

발레리나가 백조의 호수를 통해 순결한 여자의 아름다움에 섹시함까지 겸비해야 한다는

이중성을 겪게 되면서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이나 삶이란 단순한 것이다. 이젠 완벽하다고 외치며 죽어가는 여주인공을 보면서 우리가

먹고 자고 섹스하고 아파하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고 그 모든 희로애락을

겪어야 예술도 완성된다는 것. 그것처럼 단순하고 평범함 삶 속에서 비범함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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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결국 보고 말았다. 남편이나 아이들하고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다

지쳐 혼자서 그것도 조조로 예매를 하고 그 아침에 이 영화를 보자고 모인 6명과

함께 본 킹스스피치.

 

실화가 주는 감동이란 호평에 콜린 퍼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해서

진작부터 보고 싶어 목 빠지게 기다렸건만 이런 수작을 나 혼자만 보게 되다니 아쉽지만

놓칠 수 없어 그냥 혼자 봐버렸다.

영국 영화를 보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얼굴 콜린 퍼스. 웃음이 선해 보이는 이 배우는

참 진중하고 성실하고 곧은 이미지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볼 때부터 융통성 없는

강직한 남자로 나오더니 결국 자기 나라 왕까지 연기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왕족이 스캔들을 일으키기는 통에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조차 왕실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만 전쟁 시에 보인 왕가의 솔선수범과 카리스마는 여전히 노년층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 존경의 시초가 되는 인물이 바로 조지 6세.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동화처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영국에 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어 받은 조지6세에게는 지독한 말더듬이라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그것을 치료하게 위해 애를 쓰다 결국 만난 라이오넬 로그 (제프리 러쉬)

그는 거듭되는 치료 실패에 좌절해 의기소침하고 소심해진 왕를 이해해 주며 치료를

시작한다. 왕위 계승식을 연습하는 도중에야 알게 되는 로그의 비밀.

알고 보니 학위도 전문가 면허증도 없는 사람임을 알고 화가나 소리치는 왕 앞에 로그는

솔직하고 진솔하게 말한다. 자신은 고작 무명배우지만 왜 언어치료사가 되었는지 말이다.

 

결점을 갖게 된 환경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면서부터 친구가 없던 왕에게 사생활을

털어 놓을 친구로까지 발전되는 두 사람의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 비밀 이야기는

라이오넬 로그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어

영화화까지 되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결점 때문에 괴로워 답답해 하고 수치스러워 하며 눈물을 흘리는 왕과

그의 곁에서 충실한 아내 왕비 엘리자베스(헬레나 본햄 카터)와 라이오넬 로그가 그를

위해 애쓰는 장면의 연속이다. 주연배우를 포함해서 모든 배우들이 과장되지 않게

자기 역할에 맞게 연기 하는 장면들이 거부감 없이 극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동화는 어떻게 끝났던가? 임금님은 수치스러워 하는 대신에

자신의 결점의 백성의 말을 잘 듣기 위해 큰 귀를 가졌다는 마음 가짐으로 극복해 낸다.

 

말더듬이 왕 조지6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급한 성격을 조절해 가며 두려운 연설 때마다

신뢰하는 친구 라이오넬 로그를 옆에 두고 말더듬이를 극복해 간다.

하늘이 고른 사람이 왕이라고 하는데 말더듬이가 형 대신 왕이 되어야 하는 현실처럼

성경의 모세도 말을 못해서 달변의 형 아론을 앞세워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같다.

 

타고난 것으로 보여지는 특별한 사람에게도 우리처럼 평범한 고민을 지녔다는, 동화가 아닌

실화라서 더 애정을 갖게 되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공통된 공감대가 이 영화를 2011아카데미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시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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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에서 극단 여행자가 고전 운영전을 가지고 연극을 올렸다.

 

 

원래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했던 것을 대학로 우수작품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에 발굴되어 지원 받은 후 남산예술센터에서 다시 올린 것이다.

 

일단 무대가 아름답다. 길게 말린 한지가 펼쳐진 듯 무대를 꾸미고

문진처럼 검정색 오브제를 놓았다. 가운데 와 아랫부분에 소금을 가득

채워 놓고 무대의상마저도 색채를 단순화시킨 단아한 한복이다.

 

 

내용은 시문에 능했던 안평대군이 궁녀10명을 뽑아 자신의 궁, 수성궁에

모아놓고 시문을 수련시킨다. 시를 아름답게 하는 마음이 순결함에 있다고 여기는

안평대군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궁녀들에게 시와 문장을 가르친다.

 

그러다가 안평대군이 젊은 선비 김진사를 궁에 데려오는데 궁녀 중 특히 총애를 받는

궁녀 운영과 김진사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순결한 궁녀들과 함께 시문을 논하며 살고 싶은

안평대군의 반대에 상사병에 걸린 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정행각은 결국 파국에 이르고 만다.

 

음악을 맡은 기타와 가야금의 조화와 전통무용을 가미한 연출 기법등과 배우들의 열연등이

모두 훌륭해서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이 아름다웠던 연극 상사몽.

 

 

어려운 한자어와 헌시를 이용한 대사가 어려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자막을 보여주는

센스도 좋았다. 덕분에 어려운 한자어 대사와 한시에 대한 거부감 없이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고전의 아름다움과 한복의 아름다움 그리고 고전 詩까지 무대에서 즐길 수 있는 고전극

상사몽의 아름다운 무대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진은 공연이 다 끝나고 무대 인사할 때 찍었는데 그것도 못 찍게 안내원이 제지하는 바람에

겨우 찍었다. 공연하는 모습을 찍는 것도 아닌데 왜 못 찍게 했을까? 무대가 너무 아름다워

그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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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노인과 바다

리뷰 2011/03/12 23:01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연극 노인과 바다를 관람했다. 소극장 공연을 처음으로 관람하시는

친정 아버지는 "죽기 전에 딸 덕분에 이런 곳도 와 보는구나."라시며 즐거워 하셨다.

 

문호 헤밍웨이의 단편 노인과 바다는 퓰리쳐 상과 함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전무후무한

유명한 작품이다. 주로 배경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낚시배 인 것을 생각하면

소극장인 대학로 극장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마을 이장으로 나왔던 노인역의 정재진과 신예 박상협 두사람의 연기가

심각하고 굵직한 힘든 주제의 이 연극을 가지고 어떤 감동을 줄런지 기대도 되었다.

 

연출가 김진만이 배경을 해결한 방법으로는 노인을 따르는 소년을 출연시켜 배경과 물고기

그리고 회상신을 이어가게 했다. 요즘 연극의 대부분이 관객의 참여와 대화를 넣어서

극의 지루함을 이겨내려고 하는데 이 연극도 마찬가지였다.

 

종이 물고기를 이용해서 소품으로 활용하고 배를 무대 중앙에 고정해 뭍에 있는 노인의

집이 되기도 하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낚시배로도 사용했다. 낚시로 물고기를 낚게 되었을

때에는 관객이 낚시줄을 잡거나 끌어당겨 물고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점이 무겁고 지루할 수

있는 연극을 그나마 지루하지 않게 즐기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관객에게 역할을 줌으로 해서 유발되는 웃음코드 때문에 원작이 갖고 있는

고상함과 감동적인 주제가 희화화되었기에 느낌은 희석되었다. 그점이 많이 아쉽다.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낚시줄에 걸린 배만큼 큰 물고기.

며칠동안 서로의 생명을 걸고 팽팽한 낚시줄처럼 긴장된 모습으로 물고기와 노인은 대치한다.

서로의 생명과 의지가 충돌하는 순간이여서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노인과 물고기.

노인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수확을 위해 인내와 끈기로 결국 큰 물고기를

배에 묶어버리는 데 성공한다. 들뜬 마음으로 뭍으로 돌아오는 노인에게 상어가 쫓아온다.

 

 

물고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투를 펼치며 상어를 막아 보는 노인.

그러나 결국 한번 피 냄새를 맡고 말려드는 상어 떼에게 뜯어 먹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앙상한 뼈만 남은 생선을 가지고 돌아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인간이 집착했던 삶의 모든 것들이

물고기로 그 물고기를 다시 뜯어 먹는 상어로 대변되는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 인간은

자신과의 고군분투 속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인간의 고귀함이라는 메시지가

과연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는 어려웠지만 연극 속 대사 한마디는 마음에 남는다.바다로 낚시를

떠나기 전에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나는 주인공이 말한다.

"늙으면 왜 이렇게 잠 이 줄어드는지..얼마 안 남은 인생을 더 많이 누리게 하려는

뜻일까?"하고 되묻는다.

관객이 모두 빠져나가고 배우마저 떠난 빈 무대에 남은 배 한척!

왠지 그 대사가 극장을 나오면서 계속 계속 귀에 멤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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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하면서도 미워한다.

어떤 때는 내가 보고자 맘 먹은 영화의 알짜배기를 다 소개하는 스포일러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고 예고편 소개가 재미있어서 보러 갔다가 그 예고편이 전부임을 알고

이를 갈게도 만드는 것이 바로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영화 프로그램과 다르게 kbs의 영화가 좋다 만큼은 꼭 본 방을 사수하려 한다.

단 하나 추억의 부스러기 코너 때문에

 

내가 영화를 좋아했을 때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니까 조금 연식이 있다는 말씀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우리 집에는 흑백TV가 있었다. 동네에서 몇 안 되는 귀한 TV말이다.

 

나는 그 당시에 명화극장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엄마 아빠가 잠 좀 자라고 아무리 야단을 쳐도

어린 나이에 볼륨을 줄여가면서까지, TV빛이 새어나갈까 천으로 덮어가면서 영화를 보곤 했다.

 

나 역시 헐리우드 키드였던 거다.

폴 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존 웨인, 율 브리너, 비비안 리,제임스 스튜어트, 진 켈리

데보라 카, 그레이스 켈리 등이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우는 영화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늘 영화 이야기를 하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내 취미 중 하나가 영화감상이다.

 

지금은 인테리어를 업으로 하고 있지만 차라리 영화를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해봤다. 영화를 화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던 적도 많았다.

나랑 같은 학년친구 중 나만큼 영화를 많이 본 친구가 그 닥 많질 않아서..

 

아무튼 영화를 무지 좋아하는 나는 '영화가 좋다' 속 '추억의 부스러기'를 볼 때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구닥다리 명작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억할 수 있어서 좋고.

영화를 해석하는 작가의 글이 좋고 그 글을 무표정한 느낌으로 나레이션하는 원호섭님의

엔틱한 목소리 또한 좋다.

 

그 목소리 때문에 어쩜 저런 말로 영화를 표현하는 거지? 하며 감탄하며 듣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영화보다 그 글을 소개하는 멋진 글에 더 반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추억하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을 곱씹어보는 재미를 함께 주니까 그런가 보다.

 

다음 주 추억의 부스러기에는 또 어떤 영화가 나를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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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텍네시 윌리엄스를 좋아햇다. 미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극작자 중의 한명이라는

테네시 윌리엄스는 "유리 동물원"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그리고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까지

그의 작품은 연극으로도 유명하지만 영화로도 유명하다.

주로 그의 작품을 영화로 봤었다. 나는 아주 어릴적 부터 영화 마니아였으니까.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에서  주연으로 나온 폴 뉴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멋졌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의 연기에 반했었다.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영화로 기억되었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이

연극으로는 그것도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늘 칭찬했던 배종옥이 어떻게 연기할 지 궁금해서

보러 갔는데....


아쉽게도 배종옥과 더블캐스팅 된 이승비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게 되었다.

배종옥을 보길 바랬던 나와 달리 같이 간 남편은 별 기대를 안했는지 아쉬움 없이 재미있게

본 모양이다.


나도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재미있었다. 다만 내가 보고 싶은 배종옥이란 배우의

연기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내용은  남부 명문가의 자매였던 블랑쉬가 동생 스텔라를 찾아 뉴올리언스 낙원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스탠리라는 노동자와 함께 살면서 현실에 순응해가는 스텔라와 달리 블랑쉬는 여전히 예전의 화려했던 생활에

대해 미련이 많다. 블랑쉬는 노동자 스탠리를 대 놓고 멸시하고 그런 블랑쉬가 좁은 아파트에 함께 사는 것을

스탠리 역시 못마땅해 한다.  집안이 망해 가고 결혼에 실패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린 블랑쉬가 사실은 남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했다가 쫓겨나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를  알게된 스탠리는 자신과 스텔라 사이을 이간질 하는

블랑쉬가 자신의 친구 미치과 결혼하게 되는 것이 싫어 미치에게 이 사실을 밝힌다. 단 하나 남은 희망으로

미치와의 안정된 결혼을 꿈꾸던 블랑쉬는 절망하고 블랑쉬의 생일날 아이를 낳으러 스텔라가 병원에 간 사이에

스탠리는 블랑쉬를 강간까지 한다.  점점 미쳐가는 블랑쉬. 결국 블랑쉬는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하러 떠난다.


만약 오래된 영화로 비비안 리의 명연기를 봤던 사람이라면 그녀의 미모와 함께 영화의 감동이 더했을 텐데

이 연극에서는 그에 버금가는 이승비라는 배우의 열연을 볼 수 있다.

타락했지만 예전의 영욕을 잊지 못하는 블랑쉬의 오만함과 가식적인 교양미. 그리고 점점 늙어가며 자신의

마지막 무기인 미모를 잃는 것이 두려운 감정까지 이승비는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다만 내 귀가 안 좋아서 그런지 스탠리로 분한 이석준과 이승비의 고함치는 장면에서 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었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퓰리쳐 상을 수상한 이 멋진 작품의 멋진 대사를 말이다.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가 배경이 된 연극이라 그런지 막과 막사이 암전 때에 들려오던 멋진 기타 선율이

귀에 맴돈다. 그외에 나머지 모두는 영화의 감동을 그대로 이어 줄 만큼 좋은 연극이였다


정신병원으로 입원시키기 위해 자신을  데리러 온 의사에게 블랑쉬가 하는 마지막 대사.

"당신이  누구든 간에 나는 언제나  낯선 이들의 친절함에 의지해 왔어요."


블랑쉬의  비극은 바로 이것에 있다. 남자 없이 자신만의 능력으로 생활 할 생활력이 부족한 온실의 화초라는

것. 남부 지주의 딸이였기에 흑인 노예를 부리며 어려움없이 살다가 안정적인 결혼 생활이 인생의 최대

목표였던 온실의 화초 말이다.  동생처럼 자신이 속한 현실에 순응하는 대신에 블랑쉬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기를  즐기며 여전히 자신의 예전 남자 친구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 상류사회로 이끌어 주길 바란다.

성과 미모를 팔아서 살아야했던 과거에 대한 자괴감과 자신을 무시하는 스탠리때문에 깨닫게 되는  현실에서

오는 절망감. 이 모든 것이 블랑쉬를 점점 미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기내기 위해 거짓말과 환상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블랑쉬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보면 여자에게 남자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끔 하는 연극이다.


연극에서 블랑쉬의 모습은  여전히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남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한국의

블랑쉬들에게 자신의 능력으로 일어설 힘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고 있다. 남자의 사랑과 보호

만이 여자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아니다. 그것을 모르는 여자들이 너무도 많기에 아직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블랑쉬를 태우고 계속 낙원을 향해 달리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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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권을 들고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으로 올라가면서 창작극이라서 기대를 많이 했었다.


미스 사이공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는 말을 듣고 갔던 창작 뮤지컬.

공산 정권 치하 아래 고생하고 있는 북한 정치범들의 고통과 그곳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길 바란다는 내용이였다. 주연 배우들의 호연에 마지막에 탱크가 출연하는 장면이 압권.


사실 내용을 보면서 조금 실망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개신교 장로라 이런 연극에

지원금을  썼냐는 비난도 평에 들린다. 이 반공 뮤지컬이 지금의 대북 관계를

드러내는 의도적인 공연이 아닌가해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요덕스토리의 각본 연출을 맡은 사람이 바로 귀순한 새터민이란다.

정성산. 북한 노동당 간부의 아들이며 모스크바 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엘리트인데

군에서 한국 방송을 청취했다가 틀켜서 사리원 정치범 수용소에 투옥된 후 귀순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바로 북한에서 강제노역등을 자행하기로 소문난 함경도 요덕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이력에 그이 집안 자체가 그로 인해 풍비박산이 났다니 이 이야기는 모두 그가

경험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요덕수용소란 곳은 정치범을 특별히 감호하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비공개 처형 및 강제노동

갖은 고문과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성산은 요덕스토리를 통해서 자신이 겪은 인권유린의 실태를 이 뮤지컬로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얼마 전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  북에 자진 입국했다가  최근에 풀려난 로버트 박이

성고문으로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고 있는것을  보더라도 아직 북한에서 인권을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요원해 보인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 뮤지컬을  보고 불편했던 것일까? 그것은 나 역시도 크리스챤이면서

드러내놓고 선교를 하는 듯한 이 뮤지컬이 북한의 인권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다. 내 신앙의 힘인 믿음이 약해서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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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거 잘 안되는데 응모한 영화 시사회 티켓으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남보다 먼저 보게 되었다. 의외로 시사회를 통해 이 작품을 먼저 보게 되는 특혜를

누리는 이가 참 많아서 놀랐다. 이것도 입소문을 통한 홍보수단이란 것은 알지만 말이다.


아카데미에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 하고 해외 연예란에 영화를 위해  노인 분장을

해서 브레드피트의 새로운 모습을 볼거란 것 정도 외에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게되었다.

사실 난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미리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재미를 반감하는

그런 친절하다 못해 거의 스포일러에 가까운 해설프로그램을 보고 영화를 보게 되면

직접 영화를  보고 나서 티켓 값이 아까워서 그런가 보다.


영화는 참 길었다. 런닝타임 166분이란다. 하긴 한 남자의 일생을 다 보려면 지루하더라도

이 정도의 시간은 걸릴것 같다.


주인공 벤자민은 처음 부터 늙은 노인의 몸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불행의 시작. 친부로 부터

양로원  앞에 버려져 늙은 몸을 가진 어린아이로 자라는 것이 노인들 속에서의 삶이라

다행히 장애로 여기지 않게 된다. 게다가 벤자민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사랑으로

돌보는 흑인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해 진다. 바라는 것 없이 베푸는 사랑을 벤자민은 이 엄마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 벤자민은 남과 다르게 시간을 역행해서  나이가 들수록 젊어진다.

영화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서 이런 장면들이 실감나게 느껴지도록 하는데 공을

들였는데 이런 공이 없었다면 영화에 몰입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벤자민이란 주인공을 나이대 별로 아역과 청년을 다 다른 배우로 썼다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반으로 떨어뜨렸을 거다.

실제 아역이나 청년의 배우를 쓰긴 했다. 하지만 영화 속 몸은 아역이나 청년대역이지만

얼굴을 계속 같은 브레드 피트의 모습으로 나온다. 이 영화가  잘 만든  정성이 든 작품이란

사실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부분이 이 장면들.


하지만 늙은 몸으로도 벤자민은 정상인과 같은 인생의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10대에 성에 눈뜨게

되는것 ,첫사랑에 빠지는 것,  새로운 직업을 통해 세상사를 겪는것, 전쟁을 체험하는것, 등

보통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것을 단지 늙음에서 젊음으로 가는 변화의 순간 순간에 겪는다는 것이다.



코미디처럼 처리되기도 하지만  영화 내내   남들이 다 늙을 때 ,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늙는 순간에

오히려 젊어지는다는 것이 꼭 행복한 일은 아니라는것이  이 영화를 만든 중요한 의도같다.

우리가 과학의 힘이나 의학의 힘에 의지해 젊음에 집착해서 늘 유지하려고 하지만 

실상 영화 장면을 통해서 살펴보면  늙어서 죽으나 젊어서 죽으나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은 기저귀차고 자라나 기저귀 차면서 죽는다고.

외형이 달라진다고 한들, 남과 순서가 다르다고 한들,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 죽어야 한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걸 이 영화를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죽음도 보살펴 주어야겠지....


오히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대를 즐기지도 공유하지도  못하는 벤자민이 오히려 불행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같은 정서를,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 처럼

행복한 일이 없다는 것은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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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interiorzip.com BlogIcon 경희소피아 2009/12/04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구구 이렇게 좋은 무비로거 꼭 되고 싶다.